리뷰 연극

[리뷰] 연극의 맛을 전하는 작품. 연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스토리 팩토리 2025. 4. 15.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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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인뉴스 김영식]

"이건 연극이니까"

비교적 단출한 오브제가 놓인 무대. 천장에서 바닥까지 좌우 두개의 줄이 길게 매달려 있고, 무대 중앙에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좌우에는 각각 세 개의 사다리가 배치되어 있다.

배우들이 등장하고, 라이브 연주자들이 무대에 오르면서 공연은 조용히 막을 올린다.

연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는 프랑스 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원작으로 한다. 국립극단은 원작을 청소년을 위한 무대로 각색하며 서사를 단순화했고, 인물 구성 역시 ‘록산느’, ‘시라노’, ‘크리스티앙’, ‘드 기슈’ 네 명으로 재편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작품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각 인물들이 보여주는 다른 방식의 사랑을 관객들에게 전하며 진정한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연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사진제공 : 국립극단



쾌활하고 명랑한 연극으로

연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는 “안녕하세요.”라는 밝은 인사와 함께 배우들이 무대에 등장하며 시작된다.

배우들은 환한 얼굴로 관객과 직접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누고, 이내 자연스럽게 무대 위로 올라간다. 이와 같은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관객들은 고전 원작이라는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를 보다 가볍고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특히, 배우들의 명랑하고 경쾌한 연기는 기존 고전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정의 묵직함보다는, 톤을 높이고 리듬감 있는 대사로 극의 분위기를 한층 밝게 만든다.

암전 장면에서도 무대를 완전히 어둡게 하기보다는 음악을 활용해 자연스럽게 이어가며, 직관적인 조명을 통해 더욱 쉽게 감정의 흐름을 표현한다.

또한 배우들은 연극적인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전신을 활용한 큰 움직임으로 무대의 활력을 더한다. 그 결과,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는 빠르고 긴장감 있는 장면 전환과 함께 텐션 높은 흐름을 유지하며 관객의 몰입을 끌어낸다.


▲연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사진제공 : 국립극단



진심어린 가슴이 시린 짝사랑

이 작품에는 록산느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어 하는 크리스티앙, 록산느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드 기슈, 그리고 오랫동안 록산느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녀를 사랑할 시라노가 등장한다.

관객은 어느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하든, 각기 다른 사랑의 방식 속에서 아름다운 감정의 결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시라노는 진심어린 사랑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크리스티앙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고, 심지어 전쟁터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감춘 채 진심을 전한다.

그리고, 작품 초반 조금은 가볍게 진행된 작품은 후반부 가면서 조금 더 진지해지고 정극으로 가는 순간이 온다. 

특히 언제나 가슴에 사랑을 안고 있는 시라노의 대사는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데 그의 대사 하나하나에 담긴 감정의 무게와 울림은 작품을 관람하는 포인트가 되고 연극이 주는 감동을 전한다.

▲연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사진제공 : 국립극단




가장 연극적인 표현을 보여주는 작품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는 시작부터 "이건 연극이니까"라고 선언한다. 이는 연극이라는 형식이기에 가능한 설정과 표현이라는 점을 미리 알려주는 장치로, 관객들에게도 이 작품이 갖는 형식적 특성과 상상력을 열어두기를 권한다.

큰 코 때문에 사랑을 포기한 시라노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열등감 속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극적인 사랑을 선택한다.극중에 그는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크리스티앙과 록산느 사이를 이어주는 조용한 매개자로 남는다.

이러한 시라노의 감정은 연극적인 표현과 대사로 관객들에게 '이것이 연극이다' 라는 진심을 전한다.

한편, 작품은 이 시대의 청소년들에게 맞게 록산느라는 인물을 재해석했다. 더 이상 수동적으로 사랑받는 존재가 아닌, 능동적으로 사랑을 찾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 나가는 인물로 변화시킨 점 또한 인상적이다.

▲연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사진제공 : 국립극단




연극의 맛을 제대로 전하는 작품

사랑에 용감했던 록산느, 그리고 끝끝내 진심을 말하지 못했지만 영원히 사랑을 품었던 시라노. 이 두 인물을 통해 관객은 쉽지만 단단하고, 진지한 연극 한 편을 보게된다. 

매일 스마트폰을 마주하는 청소년들도 이 작품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보편적이며, 본질적인 감정인가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또한, 디지털 시대를 사는 모든이들에게 연극의 언어는 여전히 유효하고, 때로는 가장 강력한 감동이 될 수 있음을 알린다.

“이건 연극이니까.”

앞서 언급한대로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는 시작과 마지막에 이 문장을 반복하며 연극이라는 장르의 본질과 연극 안에 담긴 상상력과 진심을 관객에게 전하고 있다.

아마도 이 작품을 본 청소년 관객 중에는 언젠가 무대 위에 서고자 하며 배우의 꿈을 품게 될 누군가도 있을 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고 그 사람의 마음에 ‘연극’이라는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연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는 4월 27일까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김영식 within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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