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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라는 질문. 영화 <소주전쟁>

스토리 팩토리 2025. 6. 2.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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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인뉴스 김영식]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1997년 뉴욕. 어느 대기실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남자는, 마시려던 커피에 입도 대지 못한 채 회의실로 불려 들어간다.

그는 회사 임원들 앞에서 브리핑을 시작하고, 말이 이어질수록 점점 더 자신감이 붙는 남자. 그의 발표는 곧 IMF 외환위기로 흔들리는 한국 기업들의 인수합병 시도로 이어지고, 그는 '지금이야말로 돈을 벌 기회'라며 급히 한국으로 파견된다.

IMF 구제금융을 받으며 대한민국은 전례 없는 격변을 겪는다. 수많은 기업이 무너지고, 직장인의 가치관도 송두리째 흔들린다. 영화 <소주전쟁>은 그런 시대 한복판에서, '소주 회사가 곧 인생'인 국보 소주의 재무이사 표종록과 '성과만이 전부'인 글로벌 투자사 직원 최인범이 맞붙는 이야기를 그린다.




IMF 를 기준으로 나뉘는 세대

영화 <소주전쟁>에는 서로 다른 세대와 가치관을 대변하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소주 회사 '국보'의 재무이사 표종록(유해진), 다른 한 사람은 글로벌 투자사에서 파견된 직원 최인범(이제훈)이다.

표종록은 '회사가 곧 나고, 내가 곧 회사'인 사람이다. 소주가 좋고, 소주 일을 하는 것이 좋으며, 회사가 잘되면 자신도 행복한 삶을 산다고 믿는다. 반면, 최인범은 다르다. 철저하게 성과와 효율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회사가 보상해줘요?" 라는 최인범의 질문은, 인생을 회사에 바치며 살아가는 표종록의 삶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를 대변한다.

어쩌면 두 사람 사이에는 단순한 성격 차이를 넘어, IMF를 기점으로 단절된 세대의 간극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배우들의 캐릭터들이 끌고 가는 힘

<소주전쟁>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배우, 유해진과 이제훈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백제의 계백장군처럼 홀로 '국보'를 지키는 재무이사 표종록 역의 유해진은, 초반에는 회사에 인생을 바친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면서 그는 점차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워간다. 그 과정은 곧 IMF 시대를 살아낸 평범한 소시민의 고단한 현실과 맞닿아 있으며, 그의 변화는 극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 보인다.

유해진은 초반 단조로운 표정, 다소 주눅 든 얼굴부터 시작해 후반부에 가서는 전혀 다른 감정의 폭을 섬세하게 조절해낸다. 절제된 감정 속에서 어느순간 폭발하는 감정의 진폭은 관객들에게 묵직한 쾌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반면 이제훈은 최근 드라마 <협상의 기술>에서 보여주었던 단단한 협상가의 모습이 떠오르는 연기를 보여준다.

다만, 전작과 다른 면은 시대적으로 조금은 더 인간적이고 말랑말한해진 점이 돋보이고 대사 중 많은 부분이 영어로 이루어진 것을 보면 영어대사를 달달 외우며 연습했다는 그는 캐릭터 몰입을 위해 철저한 노력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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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제훈은 최근 드라마 <협상의 기술>에서 보여준 냉철한 협상가의 이미지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명석한 글로벌 투자사 직원 최인범 역을 소화한다.

다만 전작과 다른 점은, 그것이 어떤 결과이든 시대적 배경이 만들어내는 인간적인 면이 특정 장면 속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많은 분량의 영어 대사를 능숙하게 소화하는 모습은, 캐릭터에 대한 그의 치밀한 준비과정을 짐작케 한다.

이처럼 두 배우의 연기는 영화 속에서 마치 대극장 연극을 보는 듯한 인물 중심의 장대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마주해야 하는 질문

"술이 꿀이네!"

최근 유해진이 출연한 영화 <야당>이 경쾌한 템포와 빠른 전개로 몰입감을 이끌어냈다면, <소주전쟁>은 속도보다는 감정에 집중한다. 캐릭터들의 내면, 시대적 배경, 그리고 법정을 무대로 한 서사가 맞물리며 이야기를 미디엄 템포로 끌고 간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부 관객은 다소 집중력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극 중 '빌런'과 그에 맞서는 인물들의 눈빛,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이야기에 스며들게 되지 않을까 한다.

소주 한잔에 인생의 시름을 녹여내는 풍경은, IMF 당시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함이 없어 보인다. 영화를 관람하다보면 어려운 시간이 견디고 지나 웃을 수 있는 시기가 오고 그토록 원망하던 사람과 술 한잔 할 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은 우리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온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라는 질문이 남긴 것은 그런 삶이어야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느낄 수 있던 것이 아닐까. 영화는 명확한 해답을 주기 보다 그 질문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결국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표종록 만의 것이 아니라 IMF 를 살아낸 수 많은 사람들의 것이며 지금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두의 몫으로 남긴다.

"인생, 부드럽고 후레쉬하게 살아보자!"는 것이 어쩌면 이 영화의 진짜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이 영화를 마주하다 보면, 지금 내 삶의 모습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게 될지 모르겠다.

영화 <소주전쟁>은 5월 30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김영식 within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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