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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리뷰] 사회적 위선과 인간 본성에 던지는 질문. 연극 <지킬앤하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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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인뉴스 김영식]

"좋은 사람, 저는 그럼 사람 아닙니다."

검은 바닥, 검은 벽, 그리고 무질서하게 널부러진 의자들. 무대 중앙에는 현관처럼 보이는 문이 서 있고, 그 앞에는 '탑햇'이라 불리는 영국 신사의 모자가 놓여 있다.

아무런 음악도 흐르지 않는 정적 속에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공연장에 적응한다. 배우가 무대로 들어서자 박수가 터지고, 공연은 조용히 시작된다.

연극 <지킬앤하이드>는 동명의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전혀 다른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지킬 박사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한 인물이 화자로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최정원, 고훈정, 백석광, 강기둥이 캐스팅되어 다채로운 멀티 배역 연기를 선보인다.

1인극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번 연극은 화려한 대극장 뮤지컬과 극적으로 대비되며 차별화를 꾀한다. 하지만 이 차이는 오히려 베테랑 배우들이 보여주는 깊이 있는 연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연극 <지킬앤하이드> 퍼포머 역 최정원



1인극으로 진행되는 <지킬앤하이드>

"박수한번 치고 가죠"

1인극은 배우의 역량뿐만 아니라, 그날의 관객 분위기에 따라 공기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온 배우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법을 알고 있다.

잔뜩 긴장한 관객들에게 박수를 유도하고, 일상적인 대화로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공연은 곧 깊고 어두운 이야기로 빠져든다.

이 작품의 주요 화자는 변호사이자 재산 관리인인 '어터슨'이라는 인물이다. 하지만 배우는 어터슨을 연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킬이 되었다가 하이드가 되기도 하며,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하며 관객들을 하이드의 범죄 현장으로 몰아넣는다. 그 과정에서 극은 점점 긴박감을 더해 간다.

또한 배우는 대사의 목적성과 방향성을 명확히 하며, 리듬과 강약을 조절해 관객을 몰입시킨다. 심각한 장면에서는 숨을 죽이게 하고, 유머가 필요한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도한다.

캐스팅된 네 명의 배우가 각기 다른 개성과 움직임을 선보이는 가운데, 특히 최정원의 1인극은 부드러운 어깨 흐름과 춤을 추는 듯한 몸짓으로 마치 무대 위에서 뮤지컬 안무를 펼치듯 모든 것을 아름답게 조율해 나간다.

▲연극 <지킬앤하이드> 퍼포머 역 백석광




다양한 조명과 효과음이 만들어내는 극적인 효과

어느 순간 조명이 꺼지고, 공연장은 어둠에 잠긴다. 그리고 으스스한 대사만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연극 <지킬앤하이드>는 하이드의 범죄를 스릴러 형식으로 풀어가며,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서 한 명의 배우가 지킬과 하이드를 오가며 극적인 감정 변화를 보여주는 것처럼, 이번 연극에서도 단 한 명의 배우가 모든 감정을 온전히 드러낸다.

특히, 어둠 속에서 캐릭터의 감정을 던지고 주고받으며, 예상치 못한 조명 변화와 방향 전환을 활용해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연출이 돋보인다. 이러한 요소들은 공연에 변수를 더하며 몰입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공연은 무대 위 배우와 무대 밖 스태프가 하나가 되어 변해가는 지킬과 살인을 저지르는 하이드를 완성해 나간다.


▲연극 <지킬앤하이드> 퍼포머 역 고훈정




내 안의 하이드?

"나는 그를 구할 수 있었을까?"

이 작품은 90분이라는 공연 시간을 빈틈없이 채운다. 방대한 대사량과 이를 뒷받침하는 섬세한 움직임, 표정 연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무대 위 배우는 혼신의 힘을 다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관객들은 점점 그 몰입감에 홀딱 빠져들어갈 것이다.

연극 <지킬앤하이드>는 거대한 무대 장치와 화려한 볼거리를 내세우는 공연들과 확연히 차별화된다. 대신 미스터리한 드라마적 요소와 화자의 내적 갈등, 그리고 범죄 현장이 주는 긴장감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미니멀한 무대와 효과음만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온전히 집중하게 만들며, 관객과의 호흡 속에서 더욱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캐스팅된 네 명의 배우는 모두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연기력을 지닌 만큼, 어떤 배우의 무대를 보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경험이 될 것이다.

 

▲연극 <지킬앤하이드> 퍼포머 역 강기둥




무엇보다도 이 연극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 그리고 사회적 위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독창적이다. 우리는 과연 지킬과 하이드 중 누구에 더 가까운 존재일까? 혹은, 우리 안의 하이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연극 <지킬앤하이드>는 5월 6일까지 대학로 TOM 2관에서 공연한다.


김영식 within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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