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인뉴스 이여경]
2025 고잉홈프로젝트는 모리스 라벨 시리즈로, 라벨 탄생 150주년을 맞아 교향악곡과 실내악곡 전곡을 연주한다. 본 공연은 그 시작점으로, 이야기(話)를 담은 음악을 선보였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이미 단원들이 무대에서 손을 풀고 있었다. 시간이 되자, 소리는 점차 잦아들고 은은한 조명이 켜졌다. 이윽고 하얀 셔츠에 타이를 매지 않은, 비교적 캐주얼한 차림의 악장이 등장했다.
조율을 마치고 통상적으로는 지휘자가 등장할 차례지만,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의 진두지휘 아래 ‘세에레자드, 요정’ 서곡으로 막을 열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단원들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곳
고잉홈프로젝트는 그들이 '음악의, 음악에 의한, 음악을 위한' 악단이라 소개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전하고자 하는 바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연주에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기를 바라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런 바람은 연주가 시작 전부터 마칠 때까지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는데, 익숙한 클래식 공연의 형식과 달라 새로웠다.
먼저, 조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솔로 주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고, 곡의 분위기와 흐름에 따라 조명에 변화를 줘서 색채감이 달라지는 장면을 인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예를 들면, 솔리스트에게 붉은 조명과 푸른 조명을 비추어 미녀와 야수의 대화 장면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게 했다.
곡에 따라 악기 배치를 달리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사각형 구조로 현악기군을 서로 마주 보게 배치했는데, 인터미션 후에는 간격이 더 좁아져 맞은편 연주자가 꽤 가까워졌다. 얼굴을 마주하고 연주를 하니 음악이 고조될수록 열띠게 경쟁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미 거위 모음곡’ 중에는 마법사풍처럼 보이는 바지를 입은 바이올리니스트 타츠키 나리타가 가운데로 나와 연주한 뒤 건너편의 악장 옆자리로 가서 앉았으며,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2번을 연주할 때는 클라리넷 주자가 하수 출입문을 열어두고 통로에서 연주한 뒤 자리에 들어와 앉기도 했다.
이처럼 조명, 악기 배치, 연주자의 동선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관객과 소통하며, 음향적 효과를 의도한 노력이 엿보였다.
그들만의 호흡과 에너지로 일구어낸, 지휘자 없는 연주회
대편성 오케스트라 구성에는 일반적으로 지휘자가 있기 마련인데 포디움의 부재로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걱정은 리더이자 디렉터, 악장 역할을 맡고 있는 스베틀린 루세브의 역량을 눈과 귀로 실감하며 점차 사라졌다.
대신, 단원들의 기량을 눈에 담기 용이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직접 눈을 맞추고 위치에 따라 돌아보기도 하며 적극적으로 호흡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리더는 눈빛으로, 때론 활로 지휘하며 음악과 한 몸이 된 존재했다.
단원들은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서 정갈하게 정렬된 움직임보다는 활기 있는 퍼포먼스로 연주에 생동감을 더했다.
개성과 에너지가 음악으로 조화를 이루며, 공연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고 마침네 희열에 찬 클라이맥스를 터트렸다. 음악의 온갖 요소가 극적으로 몰아칠 때 마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전 구간 롤러코스터의 급강하를 경험하는듯한 아찔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향후가 기대되는 2025 라벨 시리즈의 첫 발걸음
프로젝트에 대한 여러 반응이 있겠지만, 새로운 접근 방식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었기에 이후 공연에서는 어떠한 시도를 선보일지 기대가 된다.
마지막 음이 연주된 직후 일제히 올린 활을 내리기 전까지, 관객들은 터져 나오려는 환호를 꾹꾹 눌러 담은 그 찰나의 시간이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마침내 잔향이 사그라들자, 열띤 박수와 함성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대신 채웠다.
리더 스베틀린 루세브는 솔리스트와 수석 등 각 파트를 옮겨 다니며 직접 소개했는데, 특히 공연 전반적으로 인상적인 기량을 보인 솔리스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졌다.
다 함께 관객석을 향한 마지막 인사를 한 뒤, 단원들은 무대를 떠나지 않고 서로 포옹하며 정답게 인사를 나누었다. 마침내 조명이 어두워지며 공연이 마침을 알렸다.
덧붙이자면, 고잉홈프로젝트의 팸플릿은 마치 공연으로 향하는 문을 여는 열쇠처럼 관객을 음악 속으로 초대하는 역할을 한다. 손열음의 글솜씨와 곡별 악기 배치도 등을 담아 이 특별한 여정으로 안내하고 있으니, 팸플릿을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현장에서 별도 구매해야 한다.)
2025 고잉홈프로젝트: 모리스 라벨 시리즈는 오는 7월, 12월에도 예정되어 있다. 세계 무대를 활약하는 연주자들이 다시 집에 돌아올 날이 기다려진다.
공연정보
공연명: 고잉홈프로젝트 : 라벨 교향악곡 전곡 시리즈 I. 話
공연일시: 2025년 2월 26일 (수) 저녁 7시 30분
공연장소: 예술의전당 음악당 콘서트홀
출연: 고잉홈프로젝트 Going Home Project
스베틀린 루세브, play-direct
PROGRAM
Maurice Ravel
모리스 라벨
Shéhérazade, ouverture de féerie
‘세헤라자데 - 요정’ 서곡
Ma mère l'Oye (“Mother Goose”), Suite
‘어미 거위’ 모음곡
휴식
Daphnis et Chloé, Suite No. 1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1번
Daphnis et Chloé, Suite No. 2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2번
이여경 within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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