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인뉴스 김영식]
"나랑 엄마는 못 가겠네요. 천국에"
아이와 둘이 살고 있는 엄마는 이런 딸의 말에 조금도 충격을 받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자신도 무섭지만 보여지는 감정을 숨기고 그저 아이가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놓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침범>은 기이한 행동을 하는 딸 소현으로 인해 일상이 붕괴되고 있는 싱글맘 영은(곽선영)과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과거의 기억을 잃은 민(권유리)이 해영(이설)과 마주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린 심리 파괴 스릴러이다.
영화는 전반부에서 각 인물과 설정을 보여주고, 후반부에서는 20년 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성이다. 두 파트는 마치 전혀 다른 영화처럼 각기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 전반부와 후반부를 별도로 분석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가 될 것이다.
물이 주는 긴장감과 인물의 감정의 극대화
영화는 한 아이가 동요를 부르며 강물이 흐르는 곳에서 시작된다. 이 장면은 단순한 도입부가 아니라, 물이라는 요소가 영화 전체에 걸쳐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할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영화 전반부에서는 수영 강사인 영은을 중심으로 실내 수영장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수영장은 밝고 따뜻한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차갑고 무거운 죽음의 기운을 떠올리게 한다. 물속은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수렁처럼 느껴지며, 영은이 마주하는 힘든 상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침범>은 스릴러 영화답게 작품의 앵글로 통해 인물들의 감정을 정밀하게 포착한다. 극단적인 무표정과 미세한 감정의 흔들림을 강조하며, 관객이 캐릭터의 심리 변화를 긴밀하게 따라가도록 만든다. 또한, 어둡고 서늘한 톤의 조명과 정적을 활용한 연출은 극중 긴장감을 극대화하며, 예측할 수 없는 전개 속에서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순수해야 할 아이가 보이는 극단적인 공포
영화 <침범>은 스릴러 장르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스릴러의 묘미는 예측할 수 없는 사건과 예상 밖의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혼란 속에서 오는 긴장감이다. <침범> 역시 초반부에서 한 어린아이가 이러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극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극 중 가장 순수해야 할 존재인 어린아이는 노란 조끼를 입고 기묘한 행동을 반복하며, 관객들에게 기존의 공포 영화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날카로운 불안감을 선사한다. 그런 아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엄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는 순간 영화는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한테 절대로 말하면 안 돼"
싱글맘 영은 역을 맡은 배우 곽선영은 담담하고 또렷한 대사 톤을 통해 평범한 일상을 지키고 싶어 하는 엄마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또한, 짧은 시간 안에 극단적으로 변모하는 캐릭터의 감정을 섬세하게 소화하며 몰입도를 높인다.
이 인물이 단순히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인지, 아니면 아이를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빌런이 될지 혼란스럽게 만드는 점도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결국, <침범>이 전달하는 감정의 시작점은 ‘일상을 지키고 싶었던’ 영은(곽선영)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년 후 특수청소업을 하는 이들
"어릴 적 기억이 없어. 그래서 사람을 잘 못 믿어"
영화 속 두 개의 이야기는 20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진행되지만, 공통적으로 누군가가 예고 없이 일상을 ‘침범’한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침범>의 영어 제목은 Somebody인데, 이는 평범했던 삶을 갑자기 침범한 ‘누군가’를 의미한다.
이는 반대로 누구나 내 삶에 '침범'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되며,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가는 딸의 기이한 행동 때문에 망가져 가는 영은의 모습과 후반부 어느 날 불쑥 나타난 해영으로 인해 일상이 변하게 되는 민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스릴러 장르 깊숙하게 들어간다.
이와 동시에, 누구나 타인의 삶을 침범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초반부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딸의 기이한 행동이 영은(곽선영)의 삶을 무너뜨리고, 후반부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해영(이설)으로 인해 민(권유리)의 일상이 변화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인 스릴러 장르로 깊숙이 빠져든다.
특히 전반부 전개 20년 후 벌어지는 민과 해영의 사건들은 멀고도 가까워 보이는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지면서 점차 이야기의 절정으로 다가가게 된다.
배우들의 수준 높은 연기의 조화
작품에는 앞서 언급한 곽선영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후반부 배우 권유리의 맹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특수청소업을 하는 민(권유리)은 해영(이설)으로부터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고, 이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과 이에 맞서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깊이 있는 감정 연기를 선보인다.
일상을 파고드는 해영 역의 배우 이설 또한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무표정한 민(권유리)과 대조적으로, 방향성을 알 수 없는 미소와 미묘한 감정의 변화로 긴장감을 조성하며, 다양한 작품에서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준 배우의 진가를 다시금 입증한다.
이렇게 각 인물들의 캐릭터 묘사와 연기 장인들이 말아주는 스릴러의 묘미는 영화 <침범>을 각 인물들의 감정과 서사가 긴밀하게 얽힌 작품으로 완성시킨다. 초반부의 불안한 분위기에서 시작해 점차 예측할 수 없는 전개, 그리고 배우들의 수준 높은 연기가 조화를 이루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영화 <침범>은 3월 12일 개봉한다.
김영식 withinnews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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