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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리뷰] 거인의 그림자를 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모차르트 – 프로그램 2' 서울 공연

[위드인뉴스 김영식]

무대 위, 단 두 개의 의자와 한 대의 피아노

넓은 무대 위에는 피아노 한 대와 의자 두 개만이 놓여 있다. 덧붙일 것도 뺄 것도 없이 절제된 무대다.

박수 속에 등장한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미세하게 의자의 위치를 조정한 뒤, 곧바로 연주에 들어간다. 무대는 고요해지고, 피아노가 말을 시작한다.

백건우의 '모차르트 – 프로그램 2', 서울 공연

지난 3월 2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모차르트 – 프로그램 2> 콘서트가 열렸다. 2

024년 5월 첫 모차르트 앨범 발매 이후, <모차르트 – 프로그램 1>으로 전국 17여 개 도시를 순회하며 성공적인 무대를 선보인 그는 이번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모차르트 – 프로그램 2>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공연은 3월 8일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에서 시작해 밀양, 김포, 익산, 공주 등지로 이어질 예정이다. 서울 공연은 그 순회의 주요 지점 중 하나였다.



거장의 해석,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멜로디

공연이 시작되자 익숙한 모차르트의 멜로디가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언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선율이지만, 백건우의 해석은 다르다.

그의 연주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가만히 음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물이 가득 찬 푸른 정원을 걷는 듯한 감상에 젖게 한다. 고요함과 적막함, 그 사이를 흐르는 깊은 감정이 공간을 채운다.

존재만으로도 빛나는 연주

이번 공연은 피아노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더라도 충분히 감동할 수 있는 무대였다. 그의 연주는 경건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피아노 학원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다양한 테크닉, 그러나 단순한 기술을 넘어선 음악적 깊이를 백건우는 조용히 보여주었다.

공연장 안에 한 아이가 꼼지락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연을 감상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연주자는 말하지 않지만, 아이에게 감성을 건네는 법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이번 백건우의 연주는 칼 같은 터치나 극단적인 정교함보다는 거장의 그림자가 담긴 연주이다. 오히려 리듬의 여유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간혹 체력적으로 힘겨워 보이는 순간도 있었지만,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무대는 그것마저 연주를 넘어 관객에게 전하는 인생의 일부로 느껴진다.

마치 최근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에 오른 배우 신구와 박근형처럼, 젊은 배우들에 비해 느리고 더딜 수 있지만, 그들이 무대에 서 있는 존재 자체가 감상의 포인트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음악으로 남기는 편지

이번 연주를 통해 백건우는 지난 79년의 음악 인생을 들려준다. 1946년생인 백건우는 올해로 한국식 나이로 팔순이다. 이번 공연은 오랜 클래식 팬들과 새로운 관객들에게 전하는 그의 음악적 편지처럼 느껴진다. 전성기를 지나 황혼으로 가는 노(老)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그 존재 자체로 감동이라 할 수 있다.

모차르트의 전 생애를 꿰뚫는 음악과 삶을 들여다보는 이번 공연은, 백건우 본인의 여정을 투영하는 듯하다. 기쁨 속에 숨어 있는 슬픔, 맑고 순수한 화음 속에 스며든 시린 아픔. 단조와 장조가 어우러진 프로그램은, 모차르트가 남긴 감정선과 백건우가 걸어온 음악 인생의 교차점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인다.

프로그램

Wolfgang Amadeus Mozart
Piano Sonata No.16 in C major K. 545 / 피아노 소나타 16번 다장조 K. 545
Rondo in A minor K. 511 / 론도 가단조 K. 511
Piano Sonata No. 12 in F major K. 332 / 피아노 소나타 12번 바장조 K. 332

Intermission

Adagio for Glass Harmonica in C major K.356/617a / 글라스 하모니카를 위한 아다지오 다장조 K.356/617a
Little Funeral March in C minor K. 453a / 작은 장례식 행진곡 다단조 K. 453a
Piano Sonata No. 10 in C major K. 330 / 피아노 소나타 10번 다장조 K. 330
Fantasy in C minor K. 475 / 환상곡 다단조 K. 475


김영식 withinnew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