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인뉴스 김영식]
마블 스튜디오 특유의 코믹스 스타일 오프닝이 상영관을 가득 채우며 관객들의 설렘을 유도한다.
그리고 곧바로 시작되는 첫 장면, 건물 꼭대기에서 다이빙하며 등장을 알리는 여자는 과거 '블랙 위도우'였던 나타샤(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동생, 옐레나(배우 플로렌스 퓨)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옐레나가 자신의 상태를 덤덤히 설명하면서도, 영혼 없이 임무를 수행한다. 총을 쏘고, 날아다니며, 사람을 향해 숨도 쉬지 않고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그 눈빛은 텅 비어 있고, 정신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듯하다.
영화 <썬더볼츠*>는 어벤져스가 사라진 이후,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선 전직 스파이, 암살자, 살인 청부업자 등 기존 마블 영웅들에게 가려졌던 캐릭터들의 팀플레이를 그리는 액션 블록버스터이다.
믿을 수 있는 영웅은 더 이상 없다. 우리를 보호할 사람은 누구인가? 어벤져스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는 이런 질문에 답을 내놓는다.
어벤저스에 속하지 못한 캐릭터들의 등장
먼저,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영화 '썬더볼츠*'에는 나타샤(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동생 옐레나(배우 플로렌스 퓨)를 비롯해 '윈터 솔저' 버키 반즈(배우 세바스찬 스탠), 팔콘에게 '캡틴 아메리카'의 자리를 빼앗긴 전직 캡틴 존 워커(배우 와이어트 러셀), 태스크마스터(배우 올가 쿠릴렌코), 고스트(배우 해나 존 케이먼), 그리고 나타샤와 옐레나의 아버지 레드 가디언, 알렉세이 쇼스타코프(배우 데이비드 하버)가 등장해 이야기를 이끈다.
어쩌면 DC 세계관의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떠올리게도 하는 이들의 조합은 기존 어벤저스가 보여준 정통 영웅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각 캐릭터는 어딘가 어둡고, 상처가 있으며, 때로는 정의보다 생존을 택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하나둘씩 화면에 등장할 때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과거를 떠올리며 미묘한 거리감을 느낀다. 하지만 마블은 그러한 관객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그들의 복잡한 내면과 개성을 노련하게 드러내며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들은 스스로를 ‘패배한 영웅’, 혹은 ‘루저’라 칭하며 마치 “우리가 때리고 부숴도, 결국 이기는 건 아니다”라는 현실적인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어쩌면 이는 기존 히어로 영화의 도식에서 벗어난, 마블의 새로운 실험처럼 다가온다.
이들은 특정한 사연으로 한 곳에 모이게 되며 서로에게 공격을 퍼붙는데 작품 초반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액션은 과거 아이언맨이나 헐크, 토르가 보여주었던 절대 액션의 기대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몸으로 하는 액션을 고려하면 매우 수준급인 액션장면을 만날 수 있어 흥미진진한 진행을 기대하게 된다.
각자의 사연으로 한 자리에 모이게 된 이들은 초반부터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운다. 특히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액션 난투극은 기존의 아이언맨, 헐크, 토르가 보여줬던 압도적인 스펙터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육체적인 접촉이 중심이 되는 액션으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한다.
절제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충돌은 관객들에게 몰입감과 긴장감을 유발하며, 이 팀이 과연 하나의 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을 더한다.
절대 액션보다는 현실 액션을 통한 공감
앞서 언급했듯, 이제 아이언맨은 없다. 헐크도 떠났고, 무엇보다 어벤져스는 사라졌다. 대신 미국 대통령은 레드 헐크가 되었고, 슈퍼 혈청을 맞지 않은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는 여전히 용감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전 세대 영웅들과는 다른 결을 지닌다. 어벤져스의 시대가 막을 내린 지금, 마블은 한동안 잊혔던 능력자들을 다시 불러모았다.
이들은 전지전능할 것 같았던 어벤져스와 달리,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능력을 지닌 인물들이다. 하지만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영웅으로 살아가는 데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영화는 이러한 인물들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며, 이들의 불완전함을 통해 더 깊은 공감을 끌어낸다.
이제 더 이상 건물이 무너지는 와중에 파편을 처리하며 상황을 일거에 해결하는 영웅들은 없다. 대신 하나의 무너진 구조물을 다섯 명이 힘을 합쳐 치워야만 하는, 훨씬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액션이 중심을 이룬다.
이는 앞으로 마블이 보여줄 액션의 방향성 또한 이와 맞닿아 있어 보인다. 초능력자가 아닌,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보다 조금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들이 벌이는 액션, 즉 현실 기반의 액션이 새로운 마블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 <썬더볼츠*>는 이러한 변화를 가장 선두에서 시도하고 있으며, 관객은 그 안에서 새로운 리듬과 스타일을 감지하게 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버키의 변화다. 이전까지는 캡틴 아메리카의 친구 정도로만 인식되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하원의원이 되었고 단독 주연급의 멋진 존재감을 보여준다. 홀로 바이크를 타고 등장하는 액션과 전투장면 연기를 통해, 그는 자신의 팬은 물론 마블 팬 전반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제 마블이 기대되는 이유
돌이켜보면 마블이 앞서 공개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에서도, 슈퍼 혈청을 맞지 않은 캡틴 아메리카는 약간의 장비에 의존하면서도 자신의 신체 능력만으로 세상을 구하며 존재감을 입증했다. 절대적인 힘보다는 인간적인 한계 속에서 만들어낸 영웅의 모습이었다.
이번 <썬더볼츠*> 역시 마찬가지다.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현실적인 액션과 독특한 빌런들이 스토리를 이끌어가며 이전 세대 영웅들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더 이상 절대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각자의 결핍과 서사를 지닌 인물들이 중심에 선다.
이러한 새로운 조합이 주는 매력은, 이전처럼 대단한 슈퍼히어로가 만들어내는 극적인 쾌감은 아닐지라도, 캐릭터들의 조용한 성장과 이야기의 짜임새를 통해 관객에게 잔잔한 미소와 만족감을 선사하지 않을까 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새 이 낯설고도 새로운 팀에 애정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 한다.
최근 마블은 연이어 안타성 혹은 2루타 정도의 성과를 낸 작품들을 내놓으며 과도기를 겪는 듯 보였다. 그러나 <썬더볼츠*>는 마블이 다시금 전체적인 세계관의 윤곽을 잡아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히고 이는 마치 과거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 초기 단독 영화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벤져스> 시리즈로 이어졌던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후반부, 익숙한 어벤져스 테마곡이 울려 퍼지는 순간, 관객은 다시금 마블의 세계로 돌아온 듯한 반가움을 느끼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작품은 강함보다 진심, 능력보다 함께하는 용기를 전하며 여전히 진행되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엔딩 크레딧 이후 쿠키 영상이 포함되어 있으니, 자리를 뜨기 전 끝까지 지켜보는 것을 추천한다.
김영식 within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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