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인뉴스 김영식]
첼로, 건반, 두 대의 기타, 그리고 드럼으로 구성된 5인조 라이브 밴드가 무대 뒤편에 자리를 잡고, 중앙에는 스탠드 마이크가 하나 놓여 있다.
연무 속에 뿌연 안개가 깔린 공연장. 차분히 입장하는 관객들은 곧 시작될 열광적인 무대를 기대하며 각자의 좌석에 조용히 착석한다. 붉은 조명이 무대 위에서 천천히 떨어지고, 타원형의 개방형 무대는 콘서트 형식의 공간으로 관객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다.
뮤지컬 <보이스 오브 햄릿 : 더 콘서트>는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기존의 극 형식을 탈피해 콘서트 형식의 1인극으로 구성되었으며, 극작과 작곡에 AI 기술이 도입된 창작 시스템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배우 옥주현, 신성록, 민우혁, 김려원이 각각 햄릿 역에 캐스팅되어 배우가 가진 각자의 색으로 햄릿을 표현해낸다는 점 또한 이 작품의 기대 요소다. 고전의 비극적 서사를 저마다의 음악과 감정으로 재해석해내는 무대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예술적 체험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듯 바람 소리와 함께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그리고 관객은 이전에 보지 못한 햄릿을 만나게 된다.
강렬한 콘서트 형식의 공연
작품의 전체적인 틀을 보면 뮤지컬 형식을 띠고 있지만, 무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향과 분위기는 마치 콘서트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오프닝 넘버가 시작되자마자 무대를 가득 채우는 드럼과 베이스의 강렬한 울림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폭발적인 사운드로 관객을 놀라게 한다. 이어 검은 후드를 쓴 배우가 무대에 등장하며 첫 넘버를 선보이는데 록 콘서트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무대 연출 또한 인상적이다.
<보이스 오브 햄릿 : 더 콘서트>가 콘서트를 연상시키는 것처럼 공연의 조명 역시 그에 걸맞게 구성되어 있다. 무대 뒤편에 설치된 대형 LED 스크린은 아이돌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조명 효과와 시각적 연출로 관객의 몰입을 높인다.
1인극이라는 형식 때문에 <헤드윅>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음악적으로만 보자면 이 작품은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오프닝 곡과 이어지는 두 번째 곡은 단 두 곡하고 공연을 끝낼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또한, 전체적으로 록 사운드가 중심이 되지만, 중간중간 재즈풍 넘버가 삽입되어 흐름에 변화를 주며 극의 긴장감을 조율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헤드윅>이 한 인물의 삶을 따라가는 감정 중심의 서사라면, <보이스 오브 햄릿 : 더 콘서트>는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기반으로 '햄릿'이라는 캐릭터 내면의 목소리를 탐색하는 작품이다.
1인극이라는 형식은 같지만, 이 작품은 보다 서사적이고 철학적인 깊이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그 점에서, <보이스 오브 햄릿>은 독특한 형식과 강렬한 넘버을 통해 고전을 새롭게 파괴하며 해석하는 현대적 무대라 할 수 있다.
햄릿의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작품
작품의 제목이 암시하듯, <보이스 오브 햄릿 : 더 콘서트>는 햄릿이라는 인물의 속마음과 깊은 내면을 음악과 무대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한다.
배우는 장면마다 강렬한 분장과 의상, 그리고 조명을 통한 다채로운 색감으로 햄릿의 복잡한 심리를 시각화한다. 록스타처럼 핸드마이크를 쥔 배우는 무대 중앙에서 강렬한 넘버를 소화하고, 때로는 무대 아래로 내려와 관객과 눈을 맞추며 소통한다. 좌우로 길게 뻗은 무대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공연의 생동감을 확대한다.
관객들도 자리에 앉아 있는 관람자에서 스탠딩을 하며 손을 흔들고 몸을 움직이며 몰입하게 되는데 이런 관객의 모습은 이 공연이 지닌 콘서트적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고전적 텍스트와 현대적 퍼포먼스를 넘나드는 이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고도의 연기력과 무대 장악력이 필수적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제작사 측은 국내 최정상 배우 4인에게 햄릿을 맡겼고 캐스팅은 이 공연의 완성도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보이스 오브 햄릿 : 더 콘서트>는 네 배우의 팬들에게는 그 자체로 선물 같은 무대가 될 것이며, 고전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고자 하는 관객들에게는 지루할 틈 없이 흥미롭고 감각적인 '햄릿'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강렬한 음악이 극을 이끌지만, 넘버 자체가 배우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기보다는 각자의 음역에 맞춰 조율된 점도 눈에 띈다. 이는 제작진이 음악적 완성도 뿐만 아니라 연기자로서 감성을 높이기 위해 세심하게 공을 들였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게 주어진 여유에서 무대 위 배우들은 비극의 감정만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재치 있는 대사와 유머 감각으로 극의 흐름을 조율하며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이러한 유연한 무대 운영은 공연의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조절하며 지루함 없이 극을 이끈다.
새로운 형태의 뮤지컬, 80분 서사에 대한 아쉬움
전통적으로 연극 <햄릿>은 3시간에 가까운 상연 시간 동안 진지하고 무게감 있게 진행된다. 관객은 각 인물의 서사와 관계를 천천히 따라가며, 셰익스피어의 묵직한 언어를 음미한 끝에 비극적인 결말에 다다르게 된다.
이런 정통 <햄릿>의 무게감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뮤지컬 <보이스 오브 햄릿 : 더 콘서트>의 80분 러닝타임은 다소 짧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햄릿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의 서사가 생략되고, 햄릿의 대사만으로 극이 전개되는 구조는 '기-승-전-결'의 드라마틱한 흐름보다 '기-승-승-결'로 느껴질 정도의 압축된 구성을 보여준다. 이는 기존 햄릿의 서사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물론, 1인극이라는 형식과 록 넘버 중심의 구성을 감안하면, 이와 같은 시간 선택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결국 <보이스 오브 햄릿 : 더 콘서트>는 고전을 재해석한 실험적 시도이자, 새로운 형식의 뮤지컬이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무대라 할 수 있다. 완성도 높은 음악, 독창적인 무대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도전 정신이 향후 진행될 이 공연을 통해 어떤 확장을 보여줄지에 대한 기대감을 전해준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뮤지컬 <보이스 오브 햄릿 : 더 콘서트>은 6월 28일(토)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된다.
김영식 within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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