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인뉴스 김영식]
현악기와 건반이 울려 퍼지는 공연장, 그 안에는 이야기의 별들이 떠오른다.
중앙에 위치한 둥근 원형 무대, 곳곳에 놓인 사각 상자들. 암전이 되고, 조명이 서서히 무대를 비추면, 관객을 향한 ‘이야기의 여행’이 시작된다.
뮤지컬 <이솝이야기>는 고대에서 현재까지, 시대를 관통해 이어지는 이야기의 힘을 담은 작품이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야기는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구전의 아름다움을 무대 위에 전해주고 있다.
이 작품은 실존 원작자로 알려진 아이소포스가 2,600년 전 지중해의 섬 사모스의 노예였다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이솝우화가 수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더해지며 만들어지고 있다는 상상력에서 펼쳐진다.
작품은 실존 인물로 알려진 아이소포스(Aisopos)가 기원전 6세기 지중해 사모스 섬의 노예였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그를 통해 시작했을 ‘이솝우화’는 수천 년 동안 다양한 문화와 목소리를 거쳐 전해져 내려오게 되었을텐데 뮤지컬은 바로 그 지점에서 상상력을 펼친다.
누군가의 말이 다른 이의 이야기로, 또 다른 시대의 진실로 확장되어가는 흐름 속에서 이솝이야기는 ‘이야기의 힘’에 대한 진심을 보여준다.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서사의 시작
“옛날 언젠가, 아기 예수가 나기 훨씬 전이었다”는 나레이션과 함께 공연이 시작된다. 이야기꾼이 무대 위에서 서서히 말을 꺼내는 듯한 도입은 마치 오래된 전설을 떠올리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모든 등장인물은 무대 위에 올라 나레이션에 맞춰 안무를 펼치고, 상황에 맞는 대사와 연기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부분의 뮤지컬이 빠른 리듬과 활발한 넘버로 오프닝을 여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차분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넘버로 조용히 관객을 이야기의 세계로 이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극 중 인물 '티모스'(전성우, 윤은오, 이석준)는 실존 인물 이솝의 생애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된 캐릭터로, 고대 그리스 사모스 섬의 노예로 태어난 소년이다. 그의 주인이자 소녀 '다나에'(송상은, 이수빈, 장민제)는 그와는 전혀 다른 운명을 지닌 인물이지만, 둘은 친구가 되어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이 둘의 평화로운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시련이 닥치고, 티모스는 다나에와 이별한 채 섬을 떠나게 된다. 이후 그는 고난과 모험의 여정을 거쳐 마침내 영웅처럼 성장한 모습으로 사모스 섬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작품은 누군가의 삶을 따라가는 모험극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여정 속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우화와 상징을 보여주며 뮤지컬을 보는 재미와 감상포인트를 전해준다.
편안하고 즐거운 이야기의 여정
“나 믿고 뛰어봐. 나 못 믿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옛날 이야기는 사실 각자의 마음속에 새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뮤지컬 <이솝이야기>는 얼핏보면 어린이를 위한 쉬운 작품처럼 보이지만, 무대 위에 펼쳐지는 활기찬 장면과 배우들의 진심 어린 연기는 모든 관객의 마음에 잔잔한 여운을 남길만하다.
공연이 진행되는 10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작품은 빠른 템포와 유쾌한 전개로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복잡한 과정없이 배우들의 대사를 따라가다 보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들 수 있다. 이처럼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는 구성과 리듬감은 관객들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관극’의 경험을 선사하게 된다.
작품의 매력은 무대 위 배우들의 에너지에서 더욱 빛난다. 약간의 유머, 그리고 진심 어린 감정이 담긴 연기는 공연의 분위기를 한층 따뜻하게 만들고 초연부터 함께한 배우들은 몸에 익은 안무와 넘버를 더욱 완성도 높게 선보이며, 작품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고 있다.
여기에 새롭게 합류한 윤은오, 이석준, 이수빈, 송나영, 김태환, 이휴 배우들은 각자의 개성과 감정을 무대 위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조화를 이루며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배우들의 진심이 담긴 무대
메인 주인공이 작품을 끌어가는 뮤지컬이 있는 반면 <이솝이야기>는 두명의 주인공 캐릭터를 이끌어가는 배우들 뿐만 아니라 앙상블 배우들까지 모두 함께 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다. 앙상블 배우들은 멀티 연기를 선보이기도 하고 다양한 안무로 무대 공간을 만들어간다.
이들은 신체극적인 표현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다양한 작품을 통해 다져진 노련한 넘버 소화력으로 관객에게 소극장 공연만의 진지한 감동을 전한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작은 몸짓 하나, 눈빛 하나에도 진심이 실려 있어, 관객은 어느새 이야기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특히 초연 당시 충무아트홀의 원형 무대에서 진행되었던 공연과 달리, 현재는 정면을 마주한 소극장인 예스24스테이지 3관으로 무대를 옮기며 더욱 밀도 있는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다. 배우들과 관객 사이의 거리감이 좁아진 만큼, 감정의 결이 세밀하게 전해지며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무대로 완성된 셈이다.
고전 속 지혜와 현재의 창작진 그리고 배우들이 담은 따뜻한 이야기는 여전히 ‘이야기의 힘’을 믿는 관객들에게 잔잔하고 강한 인상을 남길 것이다.
뮤지컬 <이솝이야기>는 오는 6월 8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공연된다.
김영식 within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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