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인뉴스 이여경]
뮤지컬 <지킬앤하이드>가 한국 공연 20주년을 맞아 대극장 블루스퀘어로 다시 돌아왔다.
1886년에 발표된 후 6개월만에 4만부가 판매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The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 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1990년 미국 휴스턴에서 초연되었다.
한국에서는 2004년 초연 이후 맞이한 10번째 정규 프로덕션으로, 명실상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로서 끝나지 않는 신화를 이어간다.
이번 시즌은 레전드 배우들과 활기를 더할 새로운 배우들까지, 신구의 조화를 이룬 환상적인 라인업과 무대, 의상, 조명 등을 업그레이드하여 무대예술의 절정을 꽃피운다.
2025년 2월 28일부터 시작된 2차 라인업으로 지킬&하이드 역에 신성록, 최재림 배우가 합류하였으며, 루시 역에 아이비, 린아 배우가, 엠마 역에는 이지혜 배우가 합류해 공연 중이다. 홍광호, 윤공주, 조정은, 손지수 배우는 막을 내리는 날까지 무대에서 활약을 이어간다.
선과 악, 지킬과 하이드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런던. 의사이자 과학자인 지킬 박사는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하는 연구를 진행한다.
그는 본질적인 두 가지 특성을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 결국 성공하지만, 폭력적이고 악랄한 자아 에드워드 하이드가 탄생하게 된다.
에드워드와 공존하는 온화하고 고상한 헨리 지킬은, 이중인격의 존재로 발생하는 문제와 범죄, 갈등을 마주하여 해독제를 주입하지만, 결국 정신을 분리하려는 실험이 가져온 치명적인 결과에 직면한다.
'록지킬' 신성록의 색깔로 그려내는 기승전결
배우 신성록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완벽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특히, 지킬 박사의 이성적인 캐릭터는 원래 그의 옷인 것처럼 소화해 냈다.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결의를 다지고 오로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지킬을 연기할 때, 최근 유행한 성격 유형 검사 'MBTI'의 'T(사고형)' 유형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목표만 바라보며 달려가는 감정 없는 로봇이 아니라, 지킬 내면의 다정하고 열정적인 성격을 대사의 감정으로 섬세하게 드러냈다. 엠마, 루시와의 복잡한 감정 상황 속에서 지킬 박사가 단순히 이성적이기만 한 인물이 아님을 확실히 표현하며 입체감을 더했다.
대표 넘버 <지금 이 순간>이 시작되자, 신성록은 무대 위에서 은은하고도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의 눈빛은 단호하고 결연한 다짐이 가득 담겨 있었고, 자신의 확고하고 뚜렷한 의지를 본인에게 되뇌듯 노래를 이어갔다.
마침내 클라이맥스에 도달하자, 한층 더 파워풀한 음성으로 무대를 온전히 지배하는 강력한 존재감을 발산하였다. 열창하는 모습이 마치 숨을 죽이고 있다가 사냥에 전력을 다하는 맹수 같기도 했다. 지킬 박사의 이성적인 모습으로 지금까지 눌러둔 감정이 결국 폭발하는 것처럼 훌륭하게 감정의 기승전결을 그려 내어 그 순간의 쾌감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여러 작품에서 악역의 재능과 입지를 다진 배우 신성록은 에드워드 하이드의 등장과 함께 그 명성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괴물 같은 모습으로 악의 본질 그 자체가 되어, 폭력적이고 잔혹하며, 악랄하고 잔인한 하이드를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
한편, 거리의 날 것 같은 성격과 순수한 사랑에 빠진 여자의 상반된 모습을 루시 윤공주 배우가 절묘하게 연기했으며, 무대를 휘어잡는 여유 있는 퍼포먼스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지혜 배우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우아하고 고결한 엠마를 소화했으며, 댄버스 경, 어터슨 역 등을 맡은 베테랑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실력은 관객들을 몰입하게 했다. 런던 거리를 배경으로 펼쳐진 넘버 <허상(Facade1)>에서는 전 배우와 앙상블이 함께 빛나며 본 공연의 매력을 더했다.
무대 예술의 백미가 펼쳐지는 곳
<지킬 앤 하이드>의 족적을 함께 걸어온 신춘수 프로듀서가 20주년 공연에서 '발전'을 중요하게 꼽은 만큼, 무대, 의상, 조명 등이 업그레이드 되었는데, 다이아몬드형 무대는 입체적인 공간감을 활용하여 공간 이동을 확실하게 표현한 점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건물 외부에서 내부로, 아래에서 위로, 가장자리에서 가운데로 이어지는 시각적 동선은 관객들을 <지킬 앤 하이드>의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들었다. 이 무대는 공간의 변화를 물 흐르듯 매끄럽게 연결하며 극의 전개에 중요한 시각적 이해를 더해주었다.
특히, 수많은 비커와 실린더로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하게 채운 지킬 박사의 연구실 무대 연출은 놀라운 퀄리티였다. LED 영상을 활용하여 시·공간적 배경을 드라마틱 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저택 안에서 창문 너머로 보는 불꽃놀이 장면은 극의 묘미를 더했다.
지속적인 흥행의 선구자로 국내 뮤지컬 역사를 이끌어 온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력과 가창력, 그리고 완벽을 더한 무대 예술이 어우러져 그 자체로 예술적 경지에 이르렀다.
정교한 세공 기술로 작품을 다듬으며 발전해 온 10번째 시즌, '지금 이 순간' 마침내 절정을 꽃피운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오는 5월 18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된다.
이여경 withinnews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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