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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리뷰] 우주로 떠난 개가 남긴 질문. 뮤지컬 <라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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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인뉴스 김영식]

"나는 다른 답을 찾을 거야. 그들과 는 다른, 그들보다 나은"

좌측 무대에는 책상이 놓여 있고, 다양한 모양의 톱니바퀴들이 연결된 구조물이 배치되어 있다. 우측 역시 비슷한 톱니바퀴들이 배경으로 보이며, 무대 중앙 바닥에는 원형 패턴이 그려져 있어 우주적인 분위기를 강조한다.

또한 무대 전체는 아치형 세트가 겹겹이 쌓여 입체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

뮤지컬 <라이카>는 냉전 시대, 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우주로 보내진 최초의 우주 탐사견 '라이카'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미국과 소련 간 '우주 경쟁'이 치열하던 시기, 소련은 생명체의 우주 생존 가능성을 실험한다는 명분으로 라이카를 서둘러 우주선에 태웠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는 우주선을 귀환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결국 라이카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한 채 우주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공연은 우주로 떠난 라이카가 B612 행성에서 어른이 된 '어린 왕자'를 만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지구 최초의 우주 탐사견이 된 ‘라이카’ 역에는 박진주, 김환희, 나하나가 출연하고, 어린 시절과 달리 인간을 혐오하게 된 어른 ‘왕자’ 역은 조형균, 윤나무, 김성식이 맡아 각각의 무대에서 감정의 결을 달리하며 이야기를 이끈다.



우주에서 어린왕자와 만나는 라이카

1957년 11월 3일, 모스크바에서는 인류의 우주 탐험을 향한 첫걸음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여정의 선봉에 선 것은 사람이 아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 '라이카'였다.

뮤지컬 <라이카>의 오프닝은 바로 이 장면에서 출발한다. 라이카가 우주로 날아오르는 순간, 무대 위 앙상블 멤버들은 깃발을 흔들며 환호하고, 다양한 화음으로 구성된 넘버는 마치 가스펠처럼 장엄하고도 희망찬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라이카의 우주 여행을 축복하는 듯하다.

그러나 우주로 떠난 라이카가 도착한 곳은 우리가 아는 현실의 우주가 아니다. 그곳은 사람처럼 걷는 바오밥나무가 있고, 장미가 말을 하는 B612 행성이다. 낯설지만 어디선가 익숙한 이 행성에서, 라이카는 인간처럼 말하고 걷게 되며 성인이 된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라이카가 마주한 왕자는 우리가 책 속에서 기억하던 순수하고 꿈꾸는 소년이 아니다. 그는 어딘가 냉소적이고,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계획을 품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인다.




우주와 행성을 표현하는 무대

앞서 언급했듯, 무대는 마치 작은 행성을 형상화한 듯 둥근 아치 구조가 층층이 겹쳐 입체적인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무대 바닥에도 원형 패턴이 그려져 있으며, 좌우 측에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배치되어 있어 마치 ‘어린 왕자의 행성’에 들어온 듯한 환상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관객들은 별빛이 반짝이는 우주 속을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프로젝터와 조명이 아낌없이 사용되며, 환상적이고도 화려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앙상블 배우들 역시 끊임없는 의상 변화와 조화로운 화음, 역동적인 안무로 무대를 풍성하게 채운다.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과 현악기, 그리고 전자음악이 어우러진 넘버들은 귀를 편안하게 감싸며, 작품의 감정을 섬세하게 끌어올린다.

특히 라이카 역으로 트리플 캐스팅된 배우 박진주는 청아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로,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라이카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내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인간을 사랑한 개, 인간을 잊은 왕자

"설마 인간을 좋아해?"

뮤지컬 <라이카>는 귀여운 개와 어린 왕자, 바오바브 나무, 장미 등 동화적인 캐릭터와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인간과 인간다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작품 속 주요 네 인물은 각기 다른 생각과 행동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윤리 의식을 드러낸다.

어린 시절과는 달리 변해버린 어린 왕자는 “그들이 사라지면 모든 게 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고, 그의 곁에 있는 장미는 “나는 오직 나를 위해 아름다워”라며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보인다.

한때 라이카를 훈련시키고 돌봤던 소련 과학자 캐롤라인은 “오늘부터 내가 널 관리할 거야. 엄청 잘해줄 거란 뜻이지”라고 안심시키면서도, 끝내 라이카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우주로 떠나보낸다.

새로운 행성에 도착해 모든 것이 신기하고 설레는 라이카,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어린 왕자의 모습이 대비되는 1막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이와, 인간에 대한 실망으로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이의 모습을 선명히 보여준다.



뮤지컬 <라이카>는 인간이 만들어낸 절망적인 세계를 마주한 어린 왕자의 시선을 통해, 아름다운 무대와 대비되는 인간의 나약한 윤리의식을 지적하며, 결국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인간다운가?”

그렇다면 어린 왕자는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작품은 감성적이고 판타지적인 무대를 통해 상처가 남은 사건 속에서도 희망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조용히 되묻는다.

뮤지컬 <라이카>는 3월 14일 개막해 5월 1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한다.


김영식 within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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