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인뉴스 김예림]
어느 순간부터 ‘추구미’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옷이나 메이크업은 물론 성격까지 내가 원하는 모습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콘텐츠가 쏟아진다. 나 역시 나만의 추구미가 있고 아마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상적인 내가 눈 앞에 나타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뮤지컬 <차미>는 이런 상상을 무대 위로 불러내 취업 스트레스, 타인과 비교 등 공감하기 쉬운 이야기를 그려낸다.
눈앞의 거대한 휴대폰 패널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속에서는 인스타 피드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양 옆 패널에서는 엑스(X)와 페이스북의 게시물들이 동시에 지나간다. 일상 사진부터 <차미> 후기까지 게시물 보는 재미에 지루할 틈이 없다.

여기에 민트색 핑크색 노란색 등 장난감처럼 알록달록한 색감의 무대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차미>의 유쾌한 판타지적 분위기를 한층 살려낸다. 이어 휴대폰화면이 음성 녹음 모드로 전환되면 차미호의 인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된다.
뮤지컬 <차미>는 인정욕구, SNS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지닌 차미호가 차미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다.
피드 속 사람들의 여행사진, 커플사진, 고양이 사진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미호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결국 ‘다른 사람들 사진을 빌려다 올리면 여기서라도 날 좋아해줄까?’하는 마음 이 피어난다. 미호는 SNS 속 만들어진 모습이 진짜 내가 되길 바라고, 그 소원은 현실이 된다. 그렇게 미호를 보정한 듯 완벽한 ‘차미’가 눈앞에 나타난다.
뮤지컬 〈차미〉는 ‘미호’와 ‘차미’라는 두 인물을 통해 자존감과 자아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미호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존감이 낮고 소심한 반면, 차미는 미호가 꿈꾸는 이상적인 인물이다.

레디메이드 인생, 선택 받지 못한 기성품
뮤지컬 <차미>는 끊임없이 남과 비교당하며 취업의 문턱 앞에 선 현대인의 모습을 마치 편의점에 진열된 상품처럼 표현한다. 채만식 작가의 ‘레디메이드 인생’을 차용한 연출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의 요구에 따라 하나의 부속품처럼 사용되는 현대인의 숙명.
일명 레디메이드 인생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미호는 스스로에 대해 ‘선택을 기다리는 하자 있는 기성품’이라 말한다. 바코드를 찍으면 ‘불합격입니다.’ 소리가 들려오는 연출은 어딘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작품은 편의점 진열대와 기성품, 그리고 옹고집전 등의 메타포를 통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드라마에서 튀어나온 듯한 백마탄 왕자님 같은 진혁도 마찬가지다.
아버지 회사의 실장이라는 직책, 뻔한 설정들이 기성품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차미>는 이러한 소재를 익살스럽게 풀어낸다.
코믹한 연출과 과정된 표현을 활용해 공감과 웃음을 동시에 유발한다. 느끼하고 왕자병 가득한 진혁의 허당미, 차미의 사랑스러움은 극의 분위기를 밝게 유지시켜준다. 특히 고대와 진혁의 대결 장면에서 갑작스러운 랩 배틀, 진혁의 어설픈 몸짓과 배우들의 몸 개그 등이 유쾌함을 더한다.

인스타그램 속 피드도, 인생도 퍼즐이다
차미와 미호는 타인의 사진을 자신의 계정에 올려 취업에 성공한다.
이렇게 한 조각씩 빌려와 네모난 퍼즐을 완성하는 삶에 대해, 차미는 ‘인생은 퍼즐을 맞추는거야. 모든 조각을 갖춘 완벽한 퍼즐, 이 세상은 완성품을 원해’라고 말한다. 차미는 모든 조각을 갖춘 퍼즐이다. 못하는 게 없는 차미는 미호 대신 연애도 일도 모두 완벽하게 해낸다.
‘니가 행복하길 바래’
전형적인 캐릭터성에 의한다면 차미는 미호를 대체하거나 위협하는 빌런이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차미는 ‘나는 너고 너는 나야’라는 생각을 잃지 않는다.
이 점에서 <차미>는 예상과는 다른 따뜻함을 건넨다. 극 초반, 차미는 ‘인생은 퍼즐이며 퍼즐을 채워야하고, 세상은 완성된 기성품을 원한다’고 말했지만, 미호가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순간 차미의 말 또한 바뀐다.

‘퍼즐은 채우는 게 아니라 그리는 것’, ‘정해진 그림도 없다’
뮤지컬 〈차미〉는 ‘좋아요’로 살아가는 시대에서 진짜 나를 사랑하는 법, 진정한 사랑과 자존감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 안에서 시작됨을 전한다. 결국 삶은 틀이 갖춰진 퍼즐이 아니라, 마음껏 그려가는 정해지지 않은 그림이니까.
사람들은 꼭 완벽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공감과 사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나의 추구미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지금의 나 또한 사랑할 수 있길 바란다. 그렇게 매일의 나를 사랑하며 내일의 나를 꿈꾸길, 당신의 성장을 응원한다.
SNS 시대에 지친 이들에게, 그리고 나답게 사는 법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위로하는 뮤지컬〈차미〉는 오는 8월 24일까지 TOM 1관에서 공연된다.
김예림 within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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