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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인터뷰] 배우 이설, 해영의 안쓰러움을 담다. 영화 <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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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인뉴스 김영식]

해영은 어딘가 위태롭고도 강렬한 존재였다. 그녀는 사랑을 원하지만 그 방법을 몰랐고, 외로움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했다.

배우 이설은 해영의 깊숙한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촬영장에서 그녀는 창문 너머의 민을 바라보던 그 눈빛, 상대를 집어삼킬 듯한 대사, 그리고 몸짓 하나까지도 치밀하게 계산된 듯 보이지만, 실은 진심으로 녹아든 순간들이었다. "진심을 다해 연기하고 싶었다"는 그녀의 말처럼, 해영의 모든 감정에는 이설의 깊은 고민과 노력이 깃들어 있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배우 이설과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설은 자신이 연기한 해영에 대해서 그녀는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보호자가 있었다면 달라질 수도 있었을 운명, 그리고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희망. 해영의 서사 안에 담긴 배우의 고민은 깊고도 넓다.

이설은 개봉을 앞둔 소감을 묻는 질문에 "너무 떨리고 개봉을 앞두고 두려운 마음이 더 크다. 저희끼리 열심히 만든 작품을 많은 분들에게 보여드리는 것이니 반응도 궁금하면서 떨린다"라고 말했다.


▲배우 이설. 사진제공 : 935엔터테인먼트




해영에 대한 첫인상과 캐릭터 구축

이설은 원래 민 역으로 제안받았지만, 처음부터 해영에게 이입했다고 밝혔다. 그는 "많은 생각 없이 꼭 한번 해보고 싶다고 본능적으로 원했던 것 같다. 저는 해영이가 엄청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데 방법을 모른다는 인상을 받았다. 잘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해영의 스타일링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처음에 여러 가지 헤어 시안이 있었는데 해영이 왠지 짧은 머리에 파마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의상도 피팅할 때 장갑, 목도리 등으로 스타일링 해보았다.

핑크 니트는 해영이가 그런 옷을 입었을 것 같아서 적극적으로 이야기 드렸다. 마지막으로 해영이는 동묘시장에서 구제옷 무더기에서 옷을 사 입었을 것 같다는 의견을 드렸는데 의상팀에서 잘 준비해주셔서 재미있게 촬영할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해영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전까지 어떤 자료도 제공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설은 "저는 대본 보고 상상력을 더해서 해영 캐릭터를 만들었던 것 같다. 영화 상 20년 간의 공백이 있기 때문에 20년이면 많이 변화했을 테니까 나만의 해영을 만들면 되겠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함께 출연한 앙겨배우 기소유의 연기를 보고 놀랐다고 전했다. "소유의 연기를 보고는 사실 무서웠다. 자그마한 친구가 그런 연기를 어떻게 하는지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고 저 어린 나이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몰입하는 것을 보면 배우로서 부럽기도 했다"라고 감탄했다.

▲배우 이설. 사진제공 :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권유리와의 액션, 몸과 몸의 대화였다"

극 중 민 역을 연기한 배우 권유리와의 호흡에 대해서는 "저는 살면서 그렇게 성품이 좋은 분을 처음 만난 것 같다. 언니처럼 건강미 넘치고 배려하고 분위기 메이커이면서 무게감 있고 어떤 면에서는 이성적인 면도 있는데 귀엽고 활발하고 웃기고 하는 언니는 저에게 아이돌 스타였다. 같이 있으면 재미있다"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이설은 극 중 권유리와의 액션 연기에 대해 "액션은 흥분되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액션은 몸과 몸의 대화인데 서로 더 격해지기도 하는 것이 분명히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상대가 '저를 죽여버리겠어' 하는 눈으로 액션을 하니 저는 '죽지 않겠어'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던 것 같다"며 긴장감 넘쳤던 촬영 순간을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중에 ‘저만 잘하면 되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두려운 마음은 컸는데 몸 쓰는 것은 재미있었다"라고 덧붙였다.

"<하녀>에서 영감 받아… 사이코패스 연구도 참고"

해영 캐릭터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감독이 추천한 세 편의 영화를 집중적으로 봤다고 밝혔다. "특히 하녀에서 영감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또한, 뇌과학자인 제임스 팰런 박사의 연구에서도 해영의 내면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얻었다. "그가 사이코패스의 뇌를 연구하다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뇌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누구의 것인지 찾아보니 본인의 뇌였다고 한다.

팰런 박사의 부모님이 그의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알고 어릴 때부터 공감 능력을 교육시켰다고 하더라. 불륜을 하거나 약속 시간에 늦는 등의 행동은 했지만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그게 인상 깊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를 해영 캐릭터와 연결 지으며 "해영이도 그런 보호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그런 희망을 가지고 연기했던 것 같다. 해영도 교화될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너무 화가 나고 분노를 표출하는 이유도 그런 환경이 없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밤새도록 연습하고 싶었다"

이설은 해영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밤을 새워 연습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해영은 너무 도드라지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특정하게 표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서 감독님과 연습한다는 핑계로 내 상상력과 생각을 이야기했고, 정리하는 과정을 가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연기 과정을 설명하며 "이럴 수도 있겠다 하면서 아이디어가 나오면 감독님께서 골라주시고, 다시 아이디어를 재생산하고 업그레이드하면서 캐릭터를 빌드업해 나갔다"라고 전했다.

▲배우 이설. 사진제공 :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창문을 보는 해영, 사냥감을 노리는 짐승 같았다"

이설은 침범 1부 초반 창문 등장 장면에 대해 특별한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저는 해영이가 창문을 보는 것은 사냥감을 노리는 짐승으로 생각했다. 맛있어 보이고 흥미롭고 알고 싶은 먹잇감이 있네 하면서 반가웠던 것 같다.

민의 방을 호기심 어리게 보고, 옷도 입어보고, 그런 모습을 살려보고 싶었다. 민의 방에 침범한 것이다. 하지만, 민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더 재미있네’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라고 말했다.

해영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이 작품을 욕심내지 말자고 생각했다. 이미 강렬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힘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어떻게 해야 할까 연구를 했는데 제가 내린 결론은 무조건 모든 것을 진심을 다해서 하자였다. 무슨 말을 하든, 어떤 사고를 할까 상상하고, 모든 말에 마음 안에는 진심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심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의 말투에서 해영을 찾았다"

이설은 해영의 독특한 말투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의 대화를 관찰했다고 밝혔다.

"아이들이 처음 만나면 어색하면서도 친해지는 모습을 참고했다. 아이가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아이들과 놀아보고 '내가 아이들 봐줄게' 하면서 해영의 모습을 찾았다. 해영이가 아이 같은 면을 간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배우 이설. 사진제공 :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엔딩 장면, 곽선영에게 홀린 듯 연기했다"

이설은 침범의 인상적인 엔딩 장면에 대해 "저는 약간 곽선영 언니에게 홀린 듯이 했다. 저는 '대사만 틀리지 말아야지' 하는 감각밖에 없었다"라며 당시의 몰입감을 전했다. 이어 "신기하게도 그런 것을 처음 경험했다. 제가 현장에서 항상 '감독님, 어땠어요?' 하고 묻는데, 그날 하루 종일 옆에도 안 왔다고 하더라. 언니에게 홀딱 빠져서 했다"라고 덧붙였다.

엔딩 장면에 대한 해석을 묻자 이설은 "저는 제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둘 다 죽어서 엄마를 만났는데, 엄마에 대한 원망이 남아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까지 독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해영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저는 안쓰러웠다. 제임스 펠런 박사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 더 안쓰러웠다. 해영을 연기하면서 '해영에게도 박사의 부모 같은 존재가 있었다면?' 하면서 되뇌었던 것 같다"라며 "나도 가능성 있어' 하는 끈을 잡고 해영을 연기했다"라고 설명했다.

"사극이 꿈… 개화기 시대에 도전하고 싶다"

이설은 평소 취미생활에 대해 "몸 쓰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 승마를 배우고 있다"며 "사극하는 것이 꿈이어서 훈련하고 있다. 승마선수도 좋고 열심히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특히 사극에 대한 강한 열정을 드러냈다.

"사극을 한다면 개화기 때가 재미있을 것 같다. 어쩌면 가장 낭만 있던 시기였던 것 같다"며 "어떤 시대이든 전통 복장을 입고 연기를 하고 싶다. 저는 한복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국악기를 다뤄도 재미있을 것 같고, 노비, 중전, 세자빈이든 꼭 하고 싶다"라고 전했다.

▲배우 이설. 사진제공 : 935엔터테인먼트




"가장 큰 성과는 사람… 두 감독님과 배우들을 만난 것"

이설은 영화 침범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로 '사람'을 꼽았다. 그는 "두 감독님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함께 연기했던 권유리 배우, 곽선영 배우 등을 알게 된 것이다"라며 "사람이 남은 것이 가장 큰 성과인 것 같다. 이렇게까지 돈독해질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친해졌다"라고 말했다.

"개봉 앞둔 지금이 가장 힘들다"

촬영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을 묻자 이설은 "지금이 제일 힘들다. 개봉을 앞두고 마음이 무겁다. 다들 재미있게 봤으면 좋겠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이어 "촬영하면서는 거의 없었다"며 현장에서의 즐거움을 강조했다.

"목숨 걸고 연기하지만 튀려고 하지 않는다"

이설은 배우로서의 방향성에 대해 "저는 식상할 수 있지만 절대 대충하지 말자는 것을 생각한다. 목숨 걸고 하되 튀려고 하지 말자"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과 소통을 잘하면서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더라. 상대와 합을 맞추고 교류하면서 교감하려고 한다"며 연기에서의 철학을 밝혔다.

끝으로 "최선을 다하지만 튀려고 하지 말자. 진심을 다하고 목숨 걸고 하자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진짜 목숨 걸고 하자. 쉬운 게 없었다"라며 연기에 대한 진정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배우 이설은 영화 <침범> 속 해영을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연기관을 다시금 다졌다. "진심을 다하되, 튀지 않으려 한다"는 그녀의 신념은 단단했고, 그 신념은 해영이라는 캐릭터를 작품 속에서 단단하게 보여주었다.

<침범>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가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연기라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한 배우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

이설이 다음 작품에서 어떤 얼굴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이유다.


김영식 within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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